성숙(부모) 콘텐츠

202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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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키워주는 것들

터치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궁금하면 검색하고, 심심하면 영상을 틀고, 지루하면 스크롤을 내립니다.

빠르고 편리하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아이는 '기다림'을 견뎌본 적이 있을까? '지루함'을 통과해본 경험이 있을까?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진 뇌는 점점 '빠른 것'만 원하게 됩니다.

느리고 긴 호흡의 활동을 견디기 어려워지죠.

이건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겁니다.



흥미로운 연구들이 있습니다.

OECD가 전 세계 15세 학생들의 PIS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종이책으로 주로 읽는 학생들은 디지털로 주로 읽는 학생들보다 읽기 점수가 평균 49점 높았습니다.

이는 약 2년 반의 학습량 차이에 해당합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 연구팀의 메타분석도 주목할 만합니다.

17만여 명이 참여한 54개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종이책 독서가 디지털 독서보다 텍스트 이해력에서 유의미하게 높은 효과를 보였습니다.

특히 시간 제한이 있거나 복잡한 텍스트를 읽을 때 그 차이가 더 뚜렷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같은 이야기라도 종이책으로 읽으면 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합니다.

등장인물의 얼굴을 상상하고, 목소리를 떠올리고, 감정의 결을 따라갑니다.

영상이 친절하게 보여주는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이 '불편한' 과정이 뇌의 여러 영역을 복합적으로 자극합니다.


디지털 기기의 가장 큰 문제는 '멀티태스킹 환경'입니다.

공부하다가 알림이 뜨고, 메시지가 오고, 영상 추천이 올라옵니다.

주의력은 계속 분산되고,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경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숏폼 영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24년 BMC Psych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숏폼 영상에 과몰입하는 청소년일수록 수면의 질이 낮고 불안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빠른 자극에 익숙해진 뇌가 쉽게 불안해지는 겁니다.


반면 종이책은 불편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따라가야 하고, 속도도 스스로 조절해야 합니다.

그 불편함 속에서 아이는 '기다림'을 배우고, '지루함'을 통과하는 힘을 기릅니다.

조금 느리고, 조금 지루한 시간을 버텨낼 때 집중력이라는 근육이 자랍니다.



종이책 독서의 선물은 집중력만이 아닙니다.

책 속 주인공의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웁니다.

직접 말하기 어려운 감정도 "이 주인공은 왜 이랬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죠.

몰입형 읽기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은 어떤가요?

자녀의 집중력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불편함과 느린 시간을 권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게는 그 시간을 허락하고 있나요?


그 시간을 부모 자신에게 먼저 허락해보세요.

아이 곁에서 조용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펼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각자의 책을 읽는 그 고요한 시간이 우리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스며들 겁니다.


이 느리고 불편한 시간은 아이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빠르게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도 꼭 필요한 시간입니다.



'불편함은 때로 가장 좋은 선물이 됩니다.'

빠른 것만 좇는 세상에서, 느리게 읽는 힘이야말로

AI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근육입니다.




*참고 연구: OECD PISA 분석 보고서(2022), Delgado et al.(2018) 메타분석, Jiang & Yoo(2024) BMC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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