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추는 질문

시험 성적에 안 나타나는 능력들
“성적표에 안 나오면 그건 능력이 아닌 걸까?”시험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숫자로 된 결과를 받아들고나 자신을 평가하게 됩니다.그리고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이게 다 나인 것 같아.” “성적이 곧 내 능력 같아.”하지만 정말 그럴까요?시험은 ‘일부 능력’만 보여준다.시험은 분명 중요한 도구입니다.하지만 시험이 보여주는 건 모든 능력의 일부일 뿐입니다.시험은 주로 빠른 이해, 정확한 계산,정해진 시간 안에 답을 찾는 능력이런 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그렇다면 사람을 잘 이해하는 능력,깊이 생각하는 힘,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감각스스로를 조절하는 힘이런 능력들은 어디에 기록될까요?어떤 능력은 ‘상황’이 와야 드러난다.시험 성적에 잘 안 드러나는 능력들은대부분 이런 특징을 가져요.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고 정답이 하나가 아니고과정 속에서 빛나고 사람이나 환경과 함께 나타나요.그래서 교실 안 시험지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에요.하지만 이런 능력들은삶에서는 아주 자주 쓰입니다.학교를 벗어나면, 다른 능력이 필요해진다학교 밖 세상을 생각해보면 정답이 정해진 문제보다여러가지 상황이 훨씬 많아요.'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이 사람과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지금 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까?''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적응할까?'이때 필요한 건 시험 점수가 아니라사람마다 다른 지능의 조합입니다. 성적이 낮다고, 능력이 낮은 건 아니다성적은 지금 이 시점에서특정 방식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를보여줄 뿐입니다.그래서 성적이 낮다고 해서네 가능성까지 낮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오히려 성적에 잘 안 보이는 능력들이나중에 더 크게 쓰이는 경우도 많아요.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나는 몇 점짜리인가?”보다이 질문이 더 중요해요.“나는 어떤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일까?”이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시험 점수는전부가 아니라 참고 자료가 됩니다.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오늘은 이 질문을 생각해봐요.'시험 말고, 내가 잘 해냈던 경험은 뭐였을까?''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은?''점수는 안 나왔지만, 스스로 뿌듯했던 일은?'이 질문 속에 시험지에는 안 찍히는 능력이 숨어 있어요.
2026-07-07 이은재 코치

피드포워드 할 수 없는 피드백이라면, 다시 생각하라
피드포워드 할 수 없는 피드백이라면, 다시 생각하라리더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직원들이 내 말을 잘 듣게 하려면 한 번쯤 따끔하게 혼낼 필요가 있다고. 저도 초보 리더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얼굴을 굳히고 권위를 앞세워 혼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여파가 그렇게 오래 갈지, 그 직원과 마음을 터놓고 신뢰하며 일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직원이 저한테 마음을 닫았던 순간이 바로 그 사건 때문이었다는 것도 긴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돌이켜 보면 그날 제가 한 것은 피드백이 아니라 비난이었습니다.안타깝게도 많은 리더들이 예전의 저처럼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성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피드백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피드백이 될까요?제가 리더들을 대상으로 일대일 코칭이나 워크숍을 할 때, 참가한 리더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피드포워드할 수 없는 피드백이라면, 다시 생각하라.“ 이 문장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으니 짧게 정리해 보겠습니다.피드백(Feedback)은 말 그대로 이미 지나간 일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과정입니다.반면 피드포워드(Feedforward)는 미래를 향합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떤 행동을 시도해 볼 수 있을지를 함께 찾는 것이지요.물론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피드백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더 나은 방향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그래서 좋은 피드백은 과거에서 시작하지만, 반드시 미래에서 끝나야 합니다.문제는 많은 리더들의 피드백이 과거에서 시작해 과거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또 실수했네요.""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죠."이런 말은 잘못은 확인해 줄 수 있지만, 다음 행동을 알려주지는 못합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너무 당연한 질문이지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다음 행동뿐입니다.그래서 피드백의 목적은 잘못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를 붙잡고 평가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으로 대화가 이어질 때, 피드백은 비난이 아니라 성장을 돕는 대화가 됩니다. 이제 피드백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내가 하는 피드백이 그저 잘못을 확인시키는 수준에 그치는 말인지, 다음 행동을 이끌어내는 피드포워드인지 생각해 본 후에 대화를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리더가 피드백을 제대로 할 때 구성원이 함께 성장하고, 조직의 성과로도 이어지게 되잖아요.
2026-07-06 권경숙 코치

함께 흘러간다는 것
내 안의 낯선 모습을 마주하며 정직한 ‘떨림’을 건넸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서투르게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매번 제자리로 굴러떨어지는 관계의 돌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어깨를 들이밀며 치열한 봄과 여름을 지나왔습니다. 그렇게 홀로 분투하듯 지나온 길의 끝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게 됩니다.비즈니스도, 삶도, 결국은 나 혼자 완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함께 흘러가는 법’을 배워가는 여정임을 말입니다. 사회이라는 공간은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을 가진 물줄기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어떤 물줄기는 거칠고 빠르게 치닫고, 어떤 물줄기는 깊고 완만하게 움직입니다.우리는 자주 내 흐름만이 옳다고 믿으며 상대를 다그치거나, 나와 다른 속도에 부딪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곤 합니다. 하지만 강물이 바위에 부딪힌다고 해서 흐름을 멈추지 않듯,서로 다른 존재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용돌이는 서로를 밀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융합의 과정입니다. 장자(莊子)는 ‘소요유(逍遙遊)’를 통해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거니는 삶을 말했습니다. 이를 관계의 맥락으로 가져온다면,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춰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가 가진 고유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함께 노를 젓는 지혜일 것입니다.나의 옳음만을 주장하던 팽팽한 긴장감을 조금만 늦추어 줄 때,비로소 상대방의 숨은 노력이 보이고 그의 서툰 방황 이면에 숨겨진 진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진정한 전문성과 리더십은 결점 없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상대가 흔들릴 때 가만히 버팀목이 되어주고,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상대의 나침반을 기꺼이 신뢰할 수 있는 상호작용의 단단함입니다.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안전한 '숲'이 되어주는 일과 같습니다.나무 한 그루는 거센 바람에 쉽게 꺾일 수 있지만,뿌리와 가지를 얽은 숲은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며 끝내 푸르름을 지켜내니까요.이제 치열했던 내면의 싸움을 잠시 내려놓고, 당신의 곁을 둘러 보세요.정답이 없는 곳에서, 저마다의 돌을 밀어 올리며 당신과 같은 속도로, 혹은 다른 주파수로 함께 걷고 있는 누군가가 보일 것입니다.그들의 존재야말로 당신의 완벽함을 증명해 줄 대상이 아니라, 함께 방황하고 함께 성장해 나갈 가장 소중한 동반자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하나의 거대한 물살일지도 모릅니다.억지로 물길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내 안의 정직한 울림을 믿고 서로를 품어 안으며 유연하게 흘러가면 됩니다.혼자 가면 빠르게 갈 수 있을지 몰라도, 함께 가야 비로소 멀리, 그리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성찰질문: Q. 오늘 당신의 삶에서 그저 묵묵히 곁을 지켜준 고마운 '물줄기(가족, 친구, 동료 등)'는 누구인가요? Q. 그 흐름에 맞추어 당신이 먼저 건네고 싶은 따뜻한 환대의 한마디는 무엇인가요?
2026-07-03 김향숙 코치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시간 - 당신 만의 그 시간은 무엇인가요?
나는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혼자 있는 시간이 불편하고, 사람들과 함께할 때 살아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러닝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달리는 건 철저하게 혼자인 시간이니까요.처음에는 음악을 틀었습니다. 고독을 채우려고. 그리고 거리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그런데 어느 날, 달리는 중에 이상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음악은 분명히 흐르고 있었는데, 들리지 않았습니다.대신 내 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풀리지 않던 일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들에 대한걱정과 고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달리는 동안 조금씩 흩어졌습니다.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덜 무거워지는 감각이었습니다. 집착하던 것들을 조금씩 떨쳐버리는 것 같은 가벼움.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표 지점에 도달해 있었습니다.그 순간부터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그런데 그 시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혼자 달리지만,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것.같은 시간, 같은 길 위를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말을 나누지 않아도,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함께 달리고 있다는 감각이 있습니다. 각자는 다른 곳에서 달립니다.하지만 하루가 끝나면 서로의 기록이 올라오고,누군가는 응원을 남깁니다.내가 함께하는 러닝 모임도 그렇습니다.같은 길을 뛰는 것은 아니지만,서로의 기록을 통해 각자의 여정을 응원합니다.함께 뛰지는 않지만,함께 달리고 있다는 연결이 생깁니다.그게 없었다면 나는 아마 러닝을 포기했을 것입니다.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했던 내가 계속 달릴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그 감각 덕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감각 안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에도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를 다시 봤을 때, 그 감각이 떠올랐습니다.심야의 식당, 유리창 안의 사람들. 처음에는 그 그림이 외로움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들은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유리창 너머 도시가 있고, 카운터 너머 바텐더가 있고, 같은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깊이 연결된 건 아니지만, 완전히 혼자도 아닌 상태. 그 미묘한 거리가 오히려 각자를 자기 안에 있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상태. 그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그림을 다시 보고 나서, 문득 떠오른 얼굴들이 있습니다.코칭을 하다 보면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못 견디겠어요."그 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나 역시 오랫동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을 불편해하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그런데 돌아보면,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힘들어했던 건 고독 자체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이 싫었던 게 아니라, 그 시간에 마주하게 되는 나 자신이 불편했던 건 아닐까.호퍼의 그림이 오래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이유는 외로움을 그려서가 아닐 것입니다.혼자인 시간 안에서, 자기 자신과 가장 솔직하게 있는 순간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도 그런 순간을 그리워하기 때문에.완전히 혼자여도 안 되고, 완전히 채워져 있어도 안 됩니다. 혼자이지만 연결된 채로, 고요하지만 살아있는 채로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만납니다.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나요.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고,고요하지만 살아있는.온전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당신만의 그 시간은 무엇인가요.
2026-07-02 이현주 코치

빽빽한 삶에 여백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하루를 빽빽한 일정과 목표로 채워야만 안심하죠.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날이면
괜히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오고,
'이렇게 멈춰 있어도 되나?' 하는 조바심에
다시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합니다.나의 쓸모를 세상에 확인받고 싶어서,
어떻게든 내 자리를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지만...
가끔은 그 모든 애씀이 숨 막히게 다가옵니다.얼마 전 많은 공감을 얻으며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그 묵직한 제목처럼 말입니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잠시 비워둔 휴식의 시간이
나의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 같아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어요.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이 치열한 풍경 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잠시 시선을 돌릴 곳이 필요합니다.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고요한 공간을 떠올려 봅니다.시선을 압도하는 드넓은 바다와 하늘 사이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너른 '여백'이 있습니다.우리는 그 텅 빈 공간을 보며
초라하다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오히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넉넉한 여백 덕분에,
잔뜩 웅크렸던 어깨의 힘을 스르르 풀고
비로소 편안하고 깊은숨을 내쉬게 되죠.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모든 순간을 성과와 결과물로
빽빽하게 채워야만
가치 있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때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나를 다그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시간.즉 '삶의 여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비어있는 시간은 결코
도태되거나 실패한 시간이 아닙니다.다음에 써 내려갈 내 삶의 이야기들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숨구멍'입니다.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느라 지쳐버렸다면,
오늘 하루쯤은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으면 어떨까요.무언가로 꽉 채워져 있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깊고 아름답습니다.
2026-07-01 이은아 코치

음양(陰陽)의 의미
우리는 흔히 음양(陰陽)이라고 말하지 양음(陽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햇볕을 뜻하는 양(陽)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라서‘양지 바른 곳’을 선호하고 그늘을 뜻하는 음(陰)은 어두운 면은 뒤에 가려져 있다.예전 국가정보원의 원훈이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이다.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변하긴 했지만... 그럼 왜 양음(陽陰)이라고 말하지 않고 음양(陰陽)이라고 할까?음양(陰陽)의 자연스러운 어감을 넘어서 철학적으로 설명하면, 양(陽)은 시작의 의미로써 땅속에 머물러 있던 씨앗을 뚫고 첫 싹이 솟구치는 순간이 양의 기운이 발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는 양(陽)의 기운은 시작을 의미하지만, 싹이 나오기 위해서는 씨앗이 땅속에서 움트는, 잠재되어 있는 시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음(陰)의 영역이다. 현상으로 드러나는 양(陽)의 시작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음(陰)의 축적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음(陰) 속에는 양(陽)이 있고, 양(陽) 속에는 음(陰)이 있으며,음양(陰陽)은 둘 이면서 하나이다. 같이 있으면서 합쳐치지 않고, 하나이면서 나누어져 있으면서도서로 떨어질 수 없는 구조이다. 이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해보면겉으로 드러난 어떤 결과는 한 순간에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노력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지원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뒷바라지, 응원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공을 바라며도와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그리고 자신이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러한 노력이나 주변의 도움은 음(陰)이라고 하며 이러한 음(陰)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양(陽)이 드러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흔히 음양(陰陽)이라고 한다.
2026-06-29 유영관 코치

나는 지금 평화로운 걸까? 포기한걸까?
마음의 평화와 자포자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둘 다 집착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출발점과 마음의 상태는 꽤 다릅니다.
마음의 평화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했고, 이제 결과를 받아들이겠다."에 가깝습니다.
- 현실을 직면합니다.
- 필요한 노력은 계속합니다.
- 결과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 마음에 여유와 안정감이 있습니다.자포자기는 "어차피 안 될 거야."에 가깝습니다. - 현실을 외면하거나 단정 짓습니다.- 노력할 힘과 의지를 잃습니다.
- 가능성마저 스스로 닫아버립니다.
- 체념, 무력감, 냉소가 남아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결과가 두려워서 미리 포기하고 있는 걸까?"
또는
"지금 이 상황이 조금 나아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다시 움직일 마음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라면 마음의 평화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만약 "아니, 어차피 소용없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자포자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결국 평화는 희망을 품은 채 놓아주는 것이고, 자포자기는 희망 자체를 놓아버리는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혹시 지금 나는 애써 자포자기를 마음의 평화라고 믿고 있지는 않을까요?
2026-06-26 김선연 코치

숙제의 어려움을 낮추어주는 부모의 현명한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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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숙제를 펼쳐 놓고 한숨을 쉬는 모습,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그 순간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그냥 두어야 하나, 도와줘야 하나."
숙제는 단순히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과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기주도학습에 필요한 자제력, 효능감, 책임감이 함께 자라납니다. 그래서 숙제 앞에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개입이 아이 대신 해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 곁에 '함께 있되',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개입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볼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어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입니다. 내용을 몰라서인지, 집중이 안 되는 것인지, 아니면 시작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인지에 따라 부모의 역할은 달라집니다. 문제를 파악하지 않은 채 무조건 곁에 앉는 것은 오히려 아이의 자립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개입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아이 곁에서 계획을 함께 세워주는 조직자가 되기도 하고, 막히는 순간 옆에서 격려해주는 조력자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 마친 숙제를 함께 검토하는 역할로도, 어떻게 접근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전략가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역할이든 아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정신과의사 노규식 박사는 『공부는 감정이다』에서 부모가 아이와 함께 같은 과제를 들여다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한 팀"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그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엄마도 이 문제를 같이 생각해봤어"라는 그 한마디는 아이에게 깊은 연대감을 심어줍니다. 이 연대감이 쌓일 때, 아이는 어려운 일 앞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압니다.
숙제의 어려움을 낮추어주는 것은 문제를 대신 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그 옆에 든든하게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2026-06-25 변정임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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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해
신청 : 2025-08-27 ~ 2025-09-20

가면의 심리
신청 : 2025-08-27 ~ 2025-09-20

성숙한 부모 그룹 코칭 과정
신청 : 2025-08-14 ~ 2025-09-08

타로를 활용한 마음웨딩 코칭 워크숍
신청 : 2025-08-11 ~ 2025-09-22


